몸의 증언


 인간 존재로서 우리의 가장 어려운 의무들 중 하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파슨즈의 환자역할에 있어 환자로서 아픈 사람은 오직 낫는 것에만 책임이 있었다. 회복사회에서 포스트-식민주의적 아픈 사람은 질병이 그 사람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책임을 진다.

듣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또한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행위이다.


 


요구는 욕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원한다. 욕망은 더more를 나타내는 자질이다. 아이가 잠자리에서 무엇이든지 더 원할 때 ㅡ이야기 하나 더, 물 한 잔 더, 포옹 한 번 더ㅡ 각각의 "더"가 다른 것에 의해 치환되는 것은 요구 안의 욕망을 표현한다. … 욕망은 충족될 수 없다. '더'는 언제나 존재한다. … 욕망에 있어 핵심은 그것의 치환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종적인 요구란 없다. 욕망은 언제나 더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몸은, 특히 아픈 몸은 욕망하기를 중단한다. 욕망에 관한 몸의 문제는 욕망을 결여lack하게 된 몸과 욕망을 생산하는productive 몸 사이의 연속체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질병은 종종 욕망을 결여하는 상태를 촉발시킨다.

 

"욕망의 최초의 상실은 신발을 사거나 치과에 가는 일상적인 행동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표현된다." 



브로야드는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소멸된 자아인지도 모르겠다"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자아를 소멸시키는 것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욕망하지 않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자신이 더 이상 건강한 치아와 새로운 신발을 누릴 만한 가치가 없을까봐 두려워한다."


 긍정적 의미의 그러든지 말든지가 아닌 포기나 무기력한 형태의 될 대로 돼라 하는 식의 마인드가 언제부터인가 저변에 깔려있다. 생활에 필수적인 욕구 충족하는 일을 관두기 시작, 망가지는 몸이나 생활을 방치하며 일상을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그거 해서 뭐해' 욕망의 상실이 질병의 한 모습이란 걸 깨달은 챕터. 이 구간을 읽고 나도 모르는 사이 병이 중증에 이르렀음을 알고 정신이 번뜩했다.


"… 그것은 지속적인 과업이며 어떤 경우에는 투쟁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할 때, 이는 하나의 성취이다. " 질병은 그 투쟁을 강화시킨다. 과거는 충격적일 정도로 명료하게 회상된다. 이는 과거가 과거로서 경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로 말해지는 질병의 경험은 과거가 되기를 거부하고 현재를 따라다니는, 동화되지 않는 파편들이다. 


카는 이 투쟁을 "그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그 사람의 어깨에서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책임"이라고 말한다.



'나는 마침내 그 남자에게 그 일이 언제 있었던 것인지 물었고 그는 삼십 년 전이라고 대답했다' 인생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 사건은 기억의 붕괴를 가져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전체의 관계를 혼란시킨다. 



"서사적 진실은 어떠어떠한 것이 좋은 이야기라고 말할 때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것"


좋은 이야기의 서사적 진실은 살아온 대로의 삶에 진실되어야 한다. 진실의 이러한 책무성accountability은 질병 이야기의 표면에 가깝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실을 말하지 않아요." 내 친구 말에 따르면, 이 부모들은 자신들의 실망과 좌절을 말하기 꺼려한다는 것이다.


좋은 질병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목격의 행위인데, 이것은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알기에 진실인 것을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이 진실은 당신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당신은 그 진실 없이는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알고 있고, 당신의 몸이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책임이다. 왜냐하면 기억이 말해짐에 따라 그것은 목격이 되고 개인을 넘어서서 공동체의 의식에 이르기 때문이다.



복원의 서사가 고통에 앞서거나 고통을 능가할 가능성을 약속한다면, 혼돈의 이야기는 우리 중에 누구라도 얼마나 쉽게 땅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한다. 복원의 서사는 아무리 나쁜 일처럼 보이는 것도 행복한 결말이 가능하게 청자를 안심시킨다. 혼돈의 서사는 욥이 그의 아내의 조언을 받아들여 신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주위를 맴돌면서 말해질 수밖에 없는 상처의 가장자리를 추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혼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어로 말을 할 수 없다. 현재의 삶으로서의 혼돈은 성찰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야기하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라드너에게 더 깊은 문제는 그녀의 삶에서 통제를 상실한 것이다. "통제의 문제는 나를 괴롭혔다. 내가 벌이고 있었던 전쟁과 나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결과를 통제할 수 없었다."



혼돈을 살았던 사람은 그 경험에 대해 회고적으로, 성찰과 시간성의 어떤 서사적 질서여부를 가능하게 하는 거리가 주어질 때 책임을 질 수 있을 뿐이다.


의료종사자들이 혼돈의 이야기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그 사람이 나아가도록 서두르는 것이다. 


색스의 혼돈은 사회가 혼돈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사회체social body의 일부분으로 보지 못하는 것과 대 우주적macrocosmic 유사점을 찾는다.



질병은 여행이라는 사건이며, 이 여행은 나중에 가면 탐구가 된다. … 아픈 사람이 점차적으로 목적의식을 깨달음에 따라 질병이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영웅은 적대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강타하면서 나아가는 헤라클레스가 아니라 자신의 깨우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속세로 돌아가기로 맹세하는 연민어린 존재인 보살이다. 신화는 괴로움agony에 관한 것이다. 영웅의 도덕적 지위는 고통을 통해서 속죄로 입문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자기자신과 세상이 하나라는, 그리고 세상과 그것의 창조의 원칙이 하나라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인간이 이 필멸을 공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공통적인 필멸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덜 건강제일주의적이고, 덜 자본주의적이고, 덜 위계적인 사회에서 산다면, 사람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 더 적은 시간을 보내는 그런 사회에서 산다면, 내가 극복해야 할 것이 그토록 많지 않았을 것이다."


보살이라는 불교적 은유에서, 소통하는 몸은 모든 존재를 구제하기를 욕망한다. 알솝이나 라드너, 혹은 브로야드와 같은 사람들은 왜 질병에 대해 쓰는 데 자신의 마지막 몇 달의 의식과 에너지를 썼을까? … 다른 사람들에게 다다르는 것이 이항적 몸이 하는 일이다.


독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출판된 질병 이야기들을 고르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 것의 도덕적 목적은 고통을 통한 인격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귀감의 예를 필요로 한다. 자기신화기들의 영웅적인 지위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데, 그것은 상처 입음에 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일은 "통증이 없는 사람들"을 "정상인들"로, "의료 지배층"을 "흰 가운들"로 지칭한다.


그리고 통증 속에 있는 이 모든 사람들 ……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과 고통을 겪는 이 모든 사람들.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걷고 있다. 우리는 다른 경험들, 다른 지식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세상에는 수많은 우리가 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마치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처럼 산다면 ㅡ그것은 정말로 중요하다ㅡ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가. 우리는 정상인들과 흰 가운들 모두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낭비하고 이싸는 것을 알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직 아픈 사람들만이 건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들은 건강을 잃음으로써 건강을 알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공감하여 풀어낼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다. 간단한 에세이집따위만 즐기다가 간만에 호흡이 긴 책다운 책을 읽으려니 숨이 조금 가빴지만 코드가 맞는 이야기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알고자하는 자극! 요즘들어선 감명깊은 매체물를 접하고나면 어떤식으로든 후기를 남겨 소극적인 방식으로나마 고마움을 표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코멘트를 열심히 달며 정리해보려했는데 지금, 최초 글을 작성한 날짜가 6월 이건만 7월 중순을 넘긴 시점에서 다듬어진 글은 한개도 없다. 어쩐 이유인지 모든 의욕을 잃었고 짧막한 글 한 줄 쓰기가 힘들어졌다. 이 글은 한동안 방치해둘 생각, 내가 그렇지 뭐


@아서 플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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